보편적 기본소득 vs 선별적 복지: 국내외 시범사업 비교연구 및 재정적 지속가능성 평가
보편적 기본소득과 선별적 복지의 이론적 배경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 UBI)은 모든 시민에게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제도입니다. 이는 행정적 단순성, 낙인효과 제거, 소득 불안정성 완화, 그리고 기술 발전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에 대응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반면 선별적 복지는 특정 조건(소득, 자산, 근로 여부 등)을 기준으로 지원 대상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제한된 재원의 효율적 배분과 도덕적 해이 방지에 강점이 있습니다.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부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를 통해 최저소득을 보장하면서도 근로의욕을 유지하는 모델을 제안했고, 철학자 필립 판 파레이스는 기본소득을 실질적 자유의 확대로 정당화했습니다. 한편 선별적 복지는 롤스의 '차등의 원칙'에 기반하여 최소 수혜자에게 우선적 지원을 집중하는 철학적 근거를 갖습니다.
국내외 기본소득 시범사업의 주요 결과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2017-2018)
핀란드는 2,000명의 실업자에게 월 560유로를 2년간 무조건 지급하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헬싱키 대학의 연구 결과, 참가자들의 고용률은 통제집단과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으나, 웰빙과 정신건강 측면에서 긍정적 효과가 확인되었습니다. 특히 참가자들은 재정적 스트레스 감소, 미래에 대한 자신감 증가, 관료적 부담 감소 등의 혜택을 보고했습니다.
경기도 청년기본소득(2019-현재)
한국의 대표적 사례인 경기도 청년기본소득은 만 24세 청년에게 분기별 25만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합니다. 경기연구원의 중간평가 결과, 수혜자의 지역 소비가 31.5% 증가했으며, 행복감과 공동체 소속감도 향상되었습니다. 특히 지역화폐 형태의 지급은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스페인 B-MINCOME 프로젝트(2017-2019)
바르셀로나의 B-MINCOME 프로젝트는 1,000가구에 최저소득을 보장하면서 일부 그룹에는 사회참여 활동을 결합한 혼합형 모델을 테스트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식품 불안정성이 감소하고, 재정적 스트레스가 줄었으며, 특히 사회참여 활동이 병행될 때 지역사회 참여도가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이는 순수한 현금지원보다 활동이 연계된 선별적 프로그램이 사회적 포용 측면에서 더 효과적일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재정적 지속가능성 분석
보편적 기본소득의 가장 큰 쟁점은 재정적 지속가능성입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추산에 따르면, 전 국민에게 월 3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려면 연간 약 186조원(GDP의 9.7%)이 필요합니다. 이는 현재 한국의 연간 복지예산(약 200조원)과 맞먹는 규모입니다.
재원 마련 방안으로는 크게 세 가지가 논의됩니다. 첫째, 기존 복지제도의 통합 및 대체(연간 약 50조원 절감 가능), 둘째, 조세개혁을 통한 추가 재원 확보(소득세 누진성 강화, 탄소세, 토지세 등), 셋째, 재정지출 구조조정(행정비용 절감 등)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안들은 정치적 실현가능성과 사회적 합의 측면에서 상당한 도전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반면 선별적 복지는 상대적으로 적은 재원으로 취약계층에 집중 지원할 수 있지만, 복잡한 자격 심사와 행정비용이 발생하며, 사각지대 문제가 지속됩니다. 한국의 경우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인구가 약 360만명으로 추정되어, 선별적 접근만으로는 포괄적 안전망 구축에 한계가 있습니다.
한국형 모델의 가능성: 혼합적 접근
국내외 시범사업 결과를 종합해 볼 때, 보편적 기본소득과 선별적 복지의 장점을 결합한 혼합모델이 한국 상황에 적합할 수 있습니다. 단계적 접근으로, 특정 연령 집단(청년, 노인)부터 시작하여 점진적으로 확대하거나, 부분 기본소득(월 10~15만원)을 도입하면서 기존 선별적 복지제도를 유지하는 방식이 현실적 대안으로 평가됩니다.
또한 지역화폐 형태의 지급은 소비 진작과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를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형 모델은 이러한 지역화폐 시스템과 결합하여 보편적 지원의 경제적 승수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론
보편적 기본소득과 선별적 복지는 각각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으며, 양자택일의 문제라기보다 상호보완적 관계로 재구성될 필요가 있습니다. 시범사업 결과들은 기본소득이 웰빙, 정신건강, 그리고 경제적 안정성 측면에서 긍정적 효과가 있음을 보여주지만, 재정적 지속가능성 문제는 여전히 중요한 도전과제로 남아있습니다.
한국 상황에서는 재정 현실을 고려한 단계적, 선택적 도입과 기존 복지제도와의 조화를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무엇보다 사회안전망 개편은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닌 사회적 연대와 공동체의 책임에 관한 근본적 질문을 포함하므로,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 과정이 전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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